『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 2015.
# 02. 사실과 진실
p. 23.
'시'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음에는 '역'易에 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시와 역을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의 세계 인식틀을 검토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pp. 24-25.
우리의 사고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구조학이 그것을 밝혀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라는 그릇은 지극히 왜소합니다. 작은 컵으로 바다를 뜨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컵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이 바닷물이긴 하지만 이미 바다가 아닙니다.
언어나 문자는 추상적인 기호일 뿐만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역시 세계의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 언어와 개념 논리라는 지극히 추상화된 그릇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담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방금 일별한 것처럼 문학, 역사, 철학 역시 세계를 온당하게 서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사철이라는 완고한 인식틀에 갇혀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의 시작임은 물론입니다.
p. 32.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은 그때 그곳의 조각에 불과합니다. 시적인 관점이라는 것은 사실성과 사회미에 충실하되 사실 자체에 갇히지 않는 것입니다.
p. 33.
사람들의 정서는 그 시대를 뛰어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옛날의 유명한 시인들은 『시경』의 시에서부터 당시, 송사 등 옛 시가들을 지척에 두고 늘 읽었다고 합니다. 내가 듣기로 임화, 이태준, 정지용 등 해방 전후의 시인 묵객들은 당시집唐詩集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듯이 우리의 정서도 그렇습니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의 어느 한 줄기일 뿐입니다. 오래된 정서를 소중하게 이어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심화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래되고 진정성이 무르녹아 있는 시적인 정한을 물려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문학적 성과가 그렇게 과거에 빚지고 있습니다.
p. 37.
시를 읽는 오늘의 현실은 매우 안이합니다. 시뿐만 아니라 시서화악 모두 교양 또는 예술이라는 장식적 그릇에 담아 두고 있습니다. 시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란 것만은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시적 정서와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유연한 시적 사유는 비단 세계 인식에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대단히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 03. 방랑하는 예술가
p. 44.
이론과 실천은 함께 갑니다. 실천의 경험을 정리하면 이론이 됩니다. 이 이론은 다음 실천의 지침이 되고 동시에 그 진리성이 검증되면서 이론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이론과 실전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좌와 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을 바꾸어 가는 것이 역사의 기본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 속에서 크게 억압을 느끼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조건을 바꾸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주어진 조건이 그들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과 체제가 억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이상과 현실이 각각 다른 사회적 집단에 의해서 담보되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은 서로 충돌하고 다투는 형식이 됩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 이상과 현실의 변증법적 통일 과정에 대하여 열린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p. 45.
20세기의 가장 뜨거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하는 체 게바라Che Guevara의 평전을 보면,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이룰 수 없는 이상은 반드시 하나씩 가져라." 현실을 존중하되 이룰 수 없는 꿈, 그걸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현실의 조각 그림을 뛰어넘어 진실을 창조하려고 하는 고민이 바로 이상과 현실을 결합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p. 46-47.
윌슨Edward O. Wilson이 최근에 친족 선택과 집단 선택에서 자기의 이론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특정 집단 내에서는 이기적인 개체가 자기 보존에 유리하지만, 집단 간의 투쟁에서는 이기적인 개체가 많은 집단이 이타적인 개체가 많은 집단에게 패배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서바이벌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DNA도 집단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밀림에서 사자들이 만나면 금방 상대를 죽일 것 같이 으르렁거리지만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죽이면 개체 수가 줄어서 자기가 속한 사자 집단의 서바이벌이 불리하기 때문에 그냥 으르렁 거리기만 합니다. DNA의 운동 원리만으로 인간이 이기적, 보수적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p. 48.
자위는 생명이 서바이벌하기 위한 자기 위로입니다. 괴로움을 덜어 주는 것입니다. 좌절과 파괴에 직면한 생명은 그것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런 극한적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괴로운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지워 나가는 심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잘못한 것보다는 잘한 것을 자주 반복 기억함으로써 생명을 격려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위로는 전체의 구도를 보수적으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게 된 여러 가지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적극 의지를 기피하는 대응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기존의 상황을 합리화하는 지위보다는 신랄한 자기비판이 더 필요합니다. 냉정한 자기비판은 일견 비정한 듯하지만 자기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서바이벌의 가능성을 훨씬 높여 줍니다. 적어도 서바이벌에 있어서 자위와는 다른 차원의 대응입니다. 물론 자위와 자기비판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함은 물론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지혜로운 조화가 바로 그러한 담론입니다.
pp. 49-50.
낭만은 불어 '로망'roman의 번역어입니다. '이야기'란 뜻입니다. 논리 체계를 갖추지 않은 서술 일반을 '로망'이라고 합니다. 낭만주의는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읽힙니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 결별이었습니다. 고전주의는 질서, 구도, 이념 등 그야말로 고전적 질서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에 비하여 낭만주의는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이 시인을 추방하라고 했듯이 서구적인 사고의 저변에는 논리와 분석이 있습니다. 낭만적 사조에 대해서는 당연히 폄하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낭만주의자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분명한 목표 지향성이 없습니다. 분명한 이유 없이 막연히 싫어하고 거부하는 태도, 이성보다는 감성에, 주체보다는 기법에 기울어 있습니다. 틀에 갇혀 있는 것들에 대한 원천적인 거부감을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분방함이 한편으로는 무책임하다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프레임을 뛰어넘는 메타meta 지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조는 바로 이런 '메타' 지향성에서 시작됩니다.
pp. 51-53.
자주 이야기하고 있듯이 공부는 세계와 인간을 잘 알기 위해서 합니다. '잘' 알기 위해서는 사실과 진실, 이상과 현실이라는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추상력과 상상력의 조화입니다. 추상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합축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문사철이 바로 개념과 논리로 압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에 대한 온당한 인식틀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잡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장 필요한 능력이 바로 이 추상력입니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는 추상력이 긴급히 요구됩니다.
[...]
추상력과 나란히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작은 것, 사소한 문제 속에 담겨 있는 엄청난 의미를 읽어 내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다만 작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빙산의 몸체를 볼 수 있는 상상력을 키워야 합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다만 사소하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사소한 문제라고 방치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의 문제라거나, 일시적인 문제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한 마리의 제비를 보면 천하에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이 두 가지 능력, 즉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하고 적절히 조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p. 55.
언어에는 분명 언어 자체의 개념적 의미와 함께 언어 외적인 정서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삶 속에서 경작된 그 사람의 인품과 체온 같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 단어의 문자적 의미가 아닙니다. 단어들이 만들어 내는 언술言述이 더 중요합니다. 언어도 결국은 언술을 구성하는 요소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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