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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담론』, 신영복 - # 04. 손때 묻은 그릇 - # 06. 군자는 본래 궁한 법이라네

by aTELIER 민석킴 2022. 2. 28.

『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 2015.

 

 

# 04. 손때 묻은 그릇


p. 57.

지난 시간에 시詩를 했습니다.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시경』과 『초사』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했습니다만 요지는 우리가 갇혀 있는 협소한 인식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경』의 사실성『초사』의 낭만성, 문사철의 추상력시서화악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을 기르는 것이 공부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공부가 근본에 있어서 시적 관점, 시적 상상력과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p. 58.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거나 정치적인 사변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은 역사의 깊이를 못 보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으로 프랑스혁명을 얘기하는 것이나 히틀러로 2차대전을 설명하는 것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은 장기 지속의 구조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pp. 63-64.

"70%의 자리에 가라!" 자기 능력이 100이면 70의 역량을 요구하는 곳에 가는 게 득위입니다. 반대로 70의 능력자가 100의 역량을 요구하는 자리에 가면 실위가 됩니다. 그 경우 부족한 30을 함량 미달로 채우거나 권위로 채우거나 거짓으로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기도 파괴되고 맡은 소임도 실패합니다. '30%의 여유',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여유가 창조성으로 예술성으로 나타납니다. '70%가 득위다'라는 주장에 반론도 없지 않습니다. 학생들로부터 능력이 70%밖에 안 되더라도 100의 자리에 가면 그만한 능력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그것이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몹시 고통스럽게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사람의 능력일나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70이다 100이다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합니다만 자리와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자리와 관련해서 특히 주의햐야 하는 것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서 그 자리의 권능을 자기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그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알튀세르Louis Althuseser의 비유가 신랄합니다. "히말라야 높은 설산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동상凍傷이 아니었습니다. "평지에 사는 코끼리보다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부려서 하는 일이 자기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과 자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p. 74.

교재에서 『주역』을 '물 뜨는 그릇'에 비유했습니다. 바닷물을 그릇으로 뜨면 그 그릇에 담긴 물은 바닷물이기는 하지만 바다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물은 어차피 그릇으로 뜰 수밖에 없습니다. 『주역』이 비록 부족하고 작은 그릇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세계를 뜨기 위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 05. 톨레랑스에서 노마디즘으로


pp. 76-77.

『논어』는 우리가 건너뛸 수 없는 고전입니다. 중국 사상을, 공자가 활동한 시기를 중심으로 공자 이전 2,500년 그리고 공자 이후 현재까지 2,500년으로 나눕니다. 최근에 중국은 공자를 세계화 아이콘으로 삼고 있습니다. 공자 연구소를 500개 설립한다고 합니다. 공자가 14년간의 망명을 끝내고 68세에 고향에 돌아와서 73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5년 동안 학사를 세워 제자들과 만납니다. 『논어』는 망명 중에 그리고 망명 후 향리에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화록입니다. 물론 공자 당시에는 『논어』란 책이 없었습니다. 공자 사후 100년 이후에 공자 학단에서 만든 책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공자 제자 중에 대상인인 자공子貢이 있습니다. 공자의 14년간의 망명도 자공의 상권이 미치는 곳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공은 자로子路나 안회顔回처럼 공자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이 공자 삼년상으르 마치고 돌아갈 때 움막을 철거하지 않고 계속 시묘살이를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사재를 털어서 학단을 유지합니다. 이 학단의 집닩거 연구 성과가 『논어』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회 같은 뛰어난 제자를 갖기보다는 자공 같은 부자 제자를 두어야 대학자가 된다고 합니다. 일찍이 사마천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06.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


pp. 89-90.

비읍은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입니다. 국읍, 도읍은 도로와 건물이 질서정연하고 특히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간입니다. 비읍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동체 문화가 온존해있는 자유로운 영역이었습니다. 이 비읍에서 공자가 무당의 사생아로 태어납니다.  야합으로 태어났다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기록에는 칠십 노인 숙량홀과 16세의 안징재 사이에서 공자가 태어납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별세하고 스물네 살 때 어머니도 사망합니다. 공자에게는 스승도 없습니다. 비읍에 유儒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장레를 대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장자』에 유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국읍에서 상이 나면 장례를 대행하고 그날 밤으로 도굴한다고 합니다. 공자는 그러한 소유들의 세계에서 예禮로써 입신합니다. 참으로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후에 노나라에서 형벌을 총괄하는 사고에 우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망명길에 오릅니다. 정치 영역에서는 완전히 실패합니다. 14년 동안의 망명과 유랑이 공자의 인생과 면모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노년에 향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러나 사후에 세가世家에 오릅니다. 제후의 반열에 오릅니다. 제후는 군주입니다. 소왕 素王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공자는 현대 중국의 세계화 아이콘입니다. 공자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만세의 목탁으로 지금도 건재합니다. 그 이유를 우리가 읽어야 합니다.

 

 

pp. 92-93.

『논어』는 공자의 대화록입니다만 대체로 만년의 유가 담론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용도 당시의 패도와 준별되는 왕도론입니다. 그런 점은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자공이 정치를 물었습니다. 정치란 食과 兵과 信의 세 가지라고 대답합니다. 자공은 명석하고 질문이 많은 제자입니다. "이 셋 중에서 한 개를 부득이해서 없앤다면 뭘 없애겠습니까?" 을 없애라, 또 한 개를 더 없앤다면? 을 없애라,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무신불립無信不立,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국경의 개념이 없어 이동이 자유롭습니다. 임금이 신망이 있으면 백성들이 몰려옵니다. 공자는 仁이란 '근자열近者說 원자래遠者來'라고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인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백성이 경제력이고 군사력이었습니다. 토지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이것이 공자의 왕도덕치입니다.

 

p. 102.

이 소설은 공자의 14년간의 유랑을 배경으로 하면서 『논어』의 대화들이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물론 언강이라는 가공의 인물입니다. 공자의 제자에 들지 못하는 잡역부로 동행하면서 공자 주변을 지켰던 사람의 회고담입니다. 이 소설에서 공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공자 일행이 진, 채 사이에서 며칠을 굶주려 일어날 기력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용히 금을 켜고 있는 공자에게로 자로가 다가가 화난 듯 이야기합니다. "군자도 궁할 때가 있습니까?" 자로의 노여운 질문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의외로 조용하고 간단합니다. "군자는 원래 궁한 법이라네." "소인은 궁하면 흐트러지는 법이지." 바로 이것이 공자의 모든 것을 한마디로 압축한 답변입니다. 이노우에는 공자의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춤추었다고 했습니다.

 

pp. 013-104.

공자와 『논어』의 세계가 어떤 것이라고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만 군자는 원래 궁하다는 신념과 천둥 번개 속에서 묵묵히 앉아서 묵상하는 광경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한마디로 공자의 인간학입니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면서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고결한 자부심입니다. 『논어』와 공자에 관하여 앞으로도 끊임없는 재구성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 건재하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어느 잡지사 기자로부터 '내 인생의 한 권의 책'을 질문 받았습니다. 난감했습니다. 결정적인 한 권의 책이 내게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책이 없다고 하자니 오만하게 비칠 것 같았습니다. 궁리 끝에 세 권을 준비했습니다. 『논어』, 『자본론』, 『노자』였습니다. 『논어』는 인간에 대한 담론이고,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관한 이론이고, 『노자』는 자연에 대한 최대 담론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