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주의 신화 ]
글쓴이 민석킴 Minseok KIM
#07
국가주의 신화
민중 예술 연구가 미술사 안에서만 논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범위는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민중 예술 개념을 좀 더 사회 ·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본 몇몇 분석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는 민중 예술이 단지 미술사 안에서 그 지위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사회 · 정치적 필요와 특정 목적으로 인해 그 지위를 얻었으며 그러므로 그것이 단순한 예술적 진보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복합적 요인에 의한 작용이라는 관점을 확인하고 또 공고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가주의 신화의 형성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신화의 형성 과정 속에서, 민중 예술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엘리트 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민중 예술에 취하는 입장은 각각 어떠했고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살펴보자.
1. 국가와 영토 그리고 국가 정체성 강화
신화와 민중 예술이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 먼저 국가주의 신화의 형성 배경을 살펴보자.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인들은 새롭게 국민 국가를 건설해야 했다. 혁명의 피로 어지러워지고, 계급 간 갈등으로 분열된 사회를 다시 통합하고, 그 구성원들을 통합된 정신 또는 이념으로 응집시켜야 했다. 그 결과, 민족주의가 솟아나고 퍼져 나갔다. 한편으로 국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그 영토 사이 관계에 대한 정당성이 요구되었다. 사회 통합과 새로운 국민 국가 건설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공통의 민족 신화를 세우는 것이었다.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국토 곳곳의 전통문화를 취합하고 민족 공통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국가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국민적 연대를 모색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중 예술과 같이 지역사회 문화와 그 삶의 양식을 그야말로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곧장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민중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곧 국가 정체성의 미적, 역사적 가치화와 그 통합 국가의 정당성을 의미했던 것이다(1). 민중 예술의 역할과 유럽의 산업화 진입의 유기적 연결을 시도하면서, 앤 -마리 티에스 Anne-Marie Thiesse 는 이렇게 묘사한다 :
« La connaissance du people et de ses traditions, le folklore [...] est en effet investie d’un rôle fondamental dans les sociétés européennes confrontées à ces deux mutations radicales que sont le passage à l’âge national et l’industrialisation. Une double mission lui est dévolue : donner à la nation l’accès à ses origines et lui permettre d’entrer dans l’avenir et toute fidélité à son identité(2) ».
다른 한편으로 19 세기 본격적인 산업화와 자본화 그리고 도시화 등의 맥락이 전국적 획일화를 가속시켰다. 그것은 영토 곳곳의 특징적이고 전통적인 지역 문화의 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그 단일화 · 규격화에 그리고 모든 자본주의 변화에 맞서 민중 예술 보존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이 점도 국가주의 신화와민중예술사이관계의구도를잘보여주는요소라고할수있다(3).
국가 정체성 강화가 정치 영역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민속연구의 역사 속에서도 국가주의 신화 형성에 관한 중요한 근거가 발견된다. 민속 문화로 간주되는 민중의, 그 특유의 표현 양식들에 관심을 가졌던 예술가들의 작업은 이 영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이 바로 18세기 말 부터 19세기 초 까지로 귀착되는 성과들 – 민속 노래나 민속 설화 같은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속 연구자, 특히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그 구전되어 온 문화 자산들 – 음악, 전설, 관습 등이 문자로 보존 · 전승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국가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민족의 정신적 · 심리적 · 이념적 결집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는 것은 타당하다. 왜냐하면 마찬가지로 같은 맥락에서 이러한 종류의 경향을 몇몇 유럽국가의 역사에서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특히 19세기 독일의 빌헬름 시대에 그들은 지역 · 농촌의 전통 문화의 증거로서 다게레오타입 은판 사진을 모으고 취합하는 방식으로 민족 통합 또는 근대 국가 조직을 모색하기도 했다(4).
2. 엘리트 문화에 대항한 민중주의
이런 다양하고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대중과 민중 예술에 대한 관심은 증가했다. 게다가 객관적 시각으로 보더라도, 민중 개념은 원시의 문화 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한 일종의 집합소이기 때문에, 그것은 순수한 사회의 원형으로 여겨졌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대중과 민중 예술이 사회 전반에서 점차 어떤 지위를 획득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기존의 문화인 엘리트 문화가 대중에 대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수용의 표본으로서, 박물관이나 기관의 민중 예술 도입을 살펴 볼 수 있다. 박물관 아카이브와 보존은 그 대상의 가치화에 상응한다. 몇가지 근거를 보자 :
« Chaque peuple doit posséder un jour son Musée d’ethnographie nationale, où il viendra tremper sans cesse sa culture indigène et chercher dans les souvenirs des générations passées des exemples de patriotisme, des modèles et des motifs propres à conserver à ses travaux et à son activité une large et puissante empreinte national(5) ».
« Présentant en 1879 au public francophone le Musée d’ethnographie scandinave nouvellement créé – le premier du genre –, le consul de Suisse à Stockholm en fait une institution exemplaire que les autres nations doivent transposer par devoir patriotique(6) ».
그 시기에, 한편으로 대중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렇게 정치와 과학 분야의 한 테마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중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들에게는 오염되고 부패한 것으로 여겨지던 도시 문화에 대한 반성에 있었다. 그들은 진짜인 것 ce qui est authentique 그리고 진정한 가치 vraies valeurs 의 보전에 대해 소신 있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엘리트 – 고유한 문화가 아닌 – 에 대항해 경계하는 성향을 나타내게 된다(7). 이처럼 엘리트의 대중문화 수용, 그 동기와 배경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미학과 예술 담론 안에서 사진에 대해 반복되어온 논쟁을 이해하는 것과 비교될 수도 있다. 즉, 이것은 엘리트주의에 대항해 선택된 민중의 표현방식과 회화를 마주한 사진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3. 민중 예술의 재출현
민중 예술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 이 장이 내포하고 전달하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앞서 다룬 바에 따르면, 그 내용을 다음의 세가지로 열거 할 수 있다 : 인류학, 즉 민족지학 연구에서의 가치화(문화간의 만남과 발견의 측면), 민속연구에서의 가치화(민중 예술의 미학적 측면), 민족주의적 가치화(정치적 목적과 사회적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 그러면서, 민중 예술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도시 파리가 민중 예술을 둘러싼 분석의 공간적 배경으로서 그 지위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민중 예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자체로 존재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 스스로 수면 위로 떠올랐을까? 아니다, 민중 예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의 증가는 오랜 기간 복합적 현상들의 작용에 대한 결과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제 파리라는 도시의 지위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 할 수 있다. 20 세기 초, 예술과 아방가르드의 중심, 파리. 문화 간 만남으로 야기된 이국성과 민속 연구, 민중 예술 개념에 대한 인지와 그 활용, 그리고 그것이 혁명이나 산업화 등 정치 ·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불러온 영향을 살펴보면서, 이 도시의 지위를 또 다른 측면으로 묘사해 볼 수 있을까? 함께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파리, 대중예술의 재출현 현장.
이와 같은 논의의 소집은 결국 연구의 영역이 한정되지 않도록 하고 다른 차원으로 구부려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특히, 민속연구 folklore 와 이국성 exotisme 에 관한 논의는 미술사를 민족지학과 인류학의 영역에 까지 확장시키면서, 예술적 생산물과 그 익명성 anonymes(anonymization)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 그 역사적 맥락과 근대사회 형성의 어두운 면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한다. 더 나아가 국가주의 신화와 그 정치적 맥락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이 연구는 결국 기존의 미술사를 넘어 현대성의 상징적 요소로 여겨지는 사진과 그 역사 안으로 확장 논의될 수 있도 록하는 것이다.
(다음) - #08. 미술사를 넘어 (사진의 역사로) - 미술과 사진
(1) [Note prise dans le cours], Paul-Louis Roubert, « Photographie, art populaire ? », op. cit. À cet égard, il suggère que « Le peuple a un rôle majeur dans la constitution de l’identité nationale, voire des mythologies nationales. [...] Le peuple est l’expression le plus authentique du rapport entre la nation et sa terre. [...] Les coutumes et les traditions paysannes deviennent le symbole de partie et le référent éthique de la nation. Toutes ces mythologies paysannes servant à consolider une identité nationale jouent également le rôle de délégation. C’est pour faire perdurer l’idée qu’il y a une continuité entre aujourd'hui et hier ».
(2) Anne-Marie Thiesse, « À chacun son folklore. Identités nationales, arts et traditions populaires » in Jean-Marie Gallais et Marie-Charlotte Calafat. 2020 (dir.). « Folklore ». Artistes et folkloristes, une histoire croisée, op. cit., p. 88.
(3) Pour appuyer le contexte de cette étude, on peut également consulter cet ouvrage, Richard Hoggart, La culture du pauvre, op, cit.
(4) Cf. Anne McCauley, « En-dehors de l’art », op. cit., p. 4. « La première récupération de photographies banales, en tant qu’artefacts méritant une place dans les collections publiques, eut lieu à l’occasion d’une réflexion sur les qualités que devaient avoir les citoyens d’un État démocratique moderne et sur la manière de profiter au mieux des nouvelles techniques de production en série. Cela se passait dans l’Allemagne wilhelmienne qui, nouvellement unifiée, cherchait à instaurer une tradition culturelle nationale. Ce fut à Hambourg, cité libre de la Hanse, longtemps rebelle à l’assimilation dans la nouvelle nation, que les photographies anciennes et contemporaines furent accueillies dans les institutions culturelles publiques, [...] ». Quant à ce type d’utilisation dans le domaine de la photographie, nous le verrons de façon plus profonde dans la partie suivante.
(5) Jules-Henri Kramer, Le Musée d’ethnographie scandinave à Stockholm, fondé et dirigé par Artur Hazelius. Notice historique et descriptive, Stockholm, P. A. Norstedt, 1878, p. 1. Cité par Anne- Marie Thiesse, in « À chacun son folklore. Identités nationales, arts et traditions populaires », op. cit., p. 87.
(6) Ibid., p. 88.
(7) On peut également citer une analyse de Paul-Louis Roubert sur la déformation et la transformation du populisme « Dans cette vision, le populaire est un groupe authentique, mais fragile par rapport à l'influence externe. Il faut donc le protéger du contact avec les impurs groupes de l'extérieur (c'est l'idée de xénophobie). C'est également une vision organique qui se greffe facilement aux mouvements de masse tels que le traditionalisme, le régionalisme, le nationalisme et l'autonomisme. Même si le folklorisme essaie pourtant de se différencier de l'opinion et d'avoir un système scientifique, la plupart de folkloristes français s'engage dans le mouvement de masse sous le régime de Vichy ». [Note prise dans le cours], Paul-Louis Roubert, « Photographie, art populaire ? »,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