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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Photo/Academy · Thèse

[#07] 국가주의 신화 : 파리, 민중 예술 재출현의 현장, 민석킴

by aTELIER 민석킴 2022. 12. 23.

[ 국가주의 신화 ]





글쓴이 민석킴 Minseok KIM


#07

국가주의 신화

 

민중 예술 연구가 술사 안에서만 논의될 수 있는 것은 니다그 위는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여기서 우리는 민중 예술 념을 좀 더 사회 · 정치적 시으로 바라본 몇몇 분석을 토하게 될 것이다다시 말해여기서는 민중 예술이 지 술사 안에서 그 지위를 획득한 것이 니라사회 · 정치적 요와 특정 목적으로 인해 그 지위를 얻었으며 그러로 그것이 순한 예술적 진보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복합적 요인에 의한 작이라는 관점을 확인하고 또 고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그러기 위해서 국가주의 화의 형성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화의 형성 과정 속에서민중 예술이 어게 그려지는지트 계급과 타리아 계급이 민중 예술에 하는 입장은 각각 어떠했고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살펴보자.

 

 

1. 국가와 영토 그리고 국가 정체성 강화

          화와 민중 예술이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저 국가주의 화의 형성 배경을 살펴보자프랑스 대혁명 이후프랑스인들은 새롭게 국민 국가를 건해야 했다혁명의 로 어지러지고계급 간 갈등으로 분된 사회를 다시 통합하고그 구성원들을 통합된 정신 또는 이념으로 야 했다그 결과주의가 나고 져 나으로 국가 정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다른 으로는 국가와 그 영토 사이 관계에 대한 정당성이 요구되었다사회 통합과 운 국민 국가 건을 위해 그들이 선한 방은 통의 민족 신화를 세우는 것이었다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는 방으로국토 곳곳의 전통문화를 합하고 민족 공통의 이야기를 다시 면서 국가 정성을 고히 하고 국민적 연대를 모했다이러한 맥락에서 민중 예술과 같이 지역사회 문화와 그 삶의 양식을 그야말로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장 그들의 을 사로잡았민중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곧 국가 정성의 역사적 가치화와 그 통합 국가의 정당성을 의했던 것이다(1)민중 예술의 역할과 유럽의 산업화 진입의 유기적 연결을 시도하면서앤 -리 스 Anne-Marie Thiesse 는 이게 사한다 :

 

 

« La connaissance du people et de ses traditions, le folklore [...] est en effet investie d’un rôle fondamental dans les sociétés européennes confrontées à ces deux mutations radicales que sont le passage à l’âge national et l’industrialisation. Une double mission lui est dévolue : donner à la nation l’accès à ses origines et lui permettre d’entrer dans l’avenir et toute fidélité à son identité(2) ».

 

 

다른 한편으로 19 세기 본격적인 산업화와 자본화 그리고 도시화 등의 맥락이 전국적 일화를 가속시켰다그것은 영토 곳곳의 특적이고 전통적인 지역 문화의 소을 의했기 때문에그 일화 · 격화에 그리고 모든 자본주의 화에 서 민중 예술 보존의 요성이 강조되었다이 점도 국가주의 화와민중예술사이관계의구도를잘보여주는요소라고할수있다(3).

          국가 정성 화가 정치 영역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니다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민속연구의 역사 속에서도 국가주의 화 형성에 관한 중요한 거가 발된다민속 문화로 간주되는 민중의그 특유의 현 양식들에 관심을 가던 예술가들의 작업은 이 영역에 대한 관심을 러일으는 결과를 가져왔다그것이 바로 18세기 말 부터 19세기 초 지로 귀착되는 성과들 – 민속 노래나 민속 화 같은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민속 연구자특히 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그 구전되어 온 문화 자산들 – 음악관습 등이 문자로 보존 · 되었고이것이 나중에 국가 정성을 화시고 민의 정적 · 심리적 · 이념적 결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여지는 것은 타당하다하면 마찬가지로 같은 맥락에서 이러한 종류의 경향을 몇몇 유럽국가의 역사에서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일의 경우특히 19세기 일의 빌헬름 시대에 그들은 지역 · 농촌의 전통 문화의 거로서 다게오타입 은판 사진을 모으고 합하는 방식으로 민족 통합 또는 대 국가 조직을 모하기도 했다(4).

 

 

2. 엘리트 문화에 대항한 민중주의

          런 다양하고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대중과 민중 예술에 대한 관심은 가했다게다가 관적 시으로 보더라도민중 념은 원시의 문화 만 니라 지역의 특성을 잘 반영한 일의 합소이기 때문에그것은 순수한 사회의 원형으로 여겨졌바꿔 말하면 이것은 대중과 민중 예술이 사회 전반에서 점차 어떤 지위를 획득 한다는 것을 의하기도 하고또 기존의 문화인 트 문화가 대중에 대한 이디어를 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하기도 한다이러한 수의 본으로서물관이나 기관의 민중 예술 도입을 살펴 볼 수 있다물관 아카와 보존은 그 대상의 가치화에 상한다몇가지 거를 보자 :

 

 

« Chaque peuple doit posséder un jour son Musée d’ethnographie nationale, où il viendra tremper sans cesse sa culture indigène et chercher dans les souvenirs des générations passées des exemples de patriotisme, des modèles et des motifs propres à conserver à ses travaux et à son activité une large et puissante empreinte national(5) ».
« Présentant en 1879 au public francophone le Musée d’ethnographie scandinave nouvellement créé – le premier du genre –, le consul de Suisse à Stockholm en fait une institution exemplaire que les autres nations doivent transposer par devoir patriotique(6) ».

 

 

그 시기에, 으로 대중에 대한 이디어는 이게 정치와 과학 분야의 한 테마가 되었지만,  으로 민중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들에게는 오되고 부한 것으로 여지던 도시 문화에 대한 반성에 있었다. 그들은 진인 것 ce qui est authentique 그리고 진정한 가치 vraies valeurs 의 보전에 대해 소 있는 입장을 했기 때문에,   고유한 문화가   에 대해 경계하는 성향을 나타게 된다(7). 처럼 엘의 대중문화 수, 그 기와 배경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학과 예술 론 안에서 사진에 대해 반복되어 을 이해하는 것과 비교될 수도 있다. , 이것은 주의에 대해 선된 민중의 현방식과 회화를 주한 사진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3. 민중 예술의 재출현

           민중 예술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 이 장이 내포하고 전하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앞서 다룬 바에 따르면그 내용을 다의 세가지로 거 할 수 있다 즉 지학 연구에서의 가치화(문화간의 만과 발의 ), 민속연구에서의 가치화(민중 예술의 학적 ), 주의적 가치화(정치적 목적과 사회적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 그러면서민중 예술이 대되었다그리고 그런 점에서이 도시 파리가 민중 예술을 싼 분석의 간적 배경으로서 그 지위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어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실 민중 예술은 이미 전부터 그 자로 존재해온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제 스스로 수면 위로 떠올니다민중 예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의 가는 오랜 기간 복합적 현상들의 작에 대한 결과이다런 관점에서이제 파리라는 도시의 지위에 대한 질문을 다시 제기 할 수 있다. 20 세기 초예술과 방가르의 중심파리문화 간 만으로 야기된 이국성과 민속 연구민중 예술 념에 대한 인지와 그 활용그리고 그것이 혁명이나 산업화 등 정치 ·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온 영향을 살펴보면서이 도시의 지위를 또 다른 면으로 사해 볼 수 있을함께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게 말할 수 있겠다파리대중예술의 재출현 현장.

 

 


 

          이와 같은 논의의 소은 결국 연구의 영역이 한정되지 않도록 하고 다 차원으로 구부려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이다. 특히, 민속연구 folklore 와 이국성 exotisme 에 관한 논의는 술사를 민지학과 인학의 영역에 지 확장시면서, 예술적 생산물과 그 명성 anonymes(anonymization)에 대해서도 생  수 있도록 하고, 가 그 역사적 맥락과 대사회 형성의 어두운 면에 대해 비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한다. 더 나가 국가주의 화와 그 정치적 맥락을 함께 살으로이 연구는 결국 기존의 술사를 어 현대성의 상적 요소로 여지는 사진과 그 역사 안으로 확장 논의될 수 있도 록하는 것이다.

 

 

 

(다음) - #08. 미술사를 넘어 (사진의 역사로) - 미술과 사진

 

 

(1) [Note prise dans le cours], Paul-Louis Roubert, « Photographie, art populaire ? », op. cit. À cet égard, il suggère que « Le peuple a un rôle majeur dans la constitution de l’identité nationale, voire des mythologies nationales. [...] Le peuple est l’expression le plus authentique du rapport entre la nation et sa terre. [...] Les coutumes et les traditions paysannes deviennent le symbole de partie et le référent éthique de la nation. Toutes ces mythologies paysannes servant à consolider une identité nationale jouent également le rôle de délégation. C’est pour faire perdurer l’idée qu’il y a une continuité entre aujourd'hui et hier ».

(2) Anne-Marie Thiesse, « À chacun son folklore. Identités nationales, arts et traditions populaires » in Jean-Marie Gallais et Marie-Charlotte Calafat. 2020 (dir.). « Folklore ». Artistes et folkloristes, une histoire croisée, op. cit., p. 88.

(3) Pour appuyer le contexte de cette étude, on peut également consulter cet ouvrage, Richard Hoggart, La culture du pauvreop, cit.

(4) CfAnne McCauley, « En-dehors de l’art », op. cit., p. 4. « La première récupération de photographies banales, en tant qu’artefacts méritant une place dans les collections publiques, eut lieu à l’occasion d’une réflexion sur les qualités que devaient avoir les citoyens d’un État démocratique moderne et sur la manière de profiter au mieux des nouvelles techniques de production en série. Cela se passait dans l’Allemagne wilhelmienne qui, nouvellement unifiée, cherchait à instaurer une tradition culturelle nationale. Ce fut à Hambourg, cité libre de la Hanse, longtemps rebelle à l’assimilation dans la nouvelle nation, que les photographies anciennes et contemporaines furent accueillies dans les institutions culturelles publiques, [...] ». Quant à ce type d’utilisation dans le domaine de la photographie, nous le verrons de façon plus profonde dans la partie suivante.

(5) Jules-Henri Kramer, Le Musée d’ethnographie scandinave à Stockholm, fondé et dirigé par Artur Hazelius. Notice historique et descriptive, Stockholm, P. A. Norstedt, 1878, p. 1. Cité par Anne- Marie Thiesse, in « À chacun son folklore. Identités nationales, arts et traditions populaires », op. cit.p. 87.

(6) Ibid., p. 88.

(7) On peut également citer une analyse de Paul-Louis Roubert sur la déformation et la transformation du populisme « Dans cette vision, le populaire est un groupe authentique, mais fragile par rapport à l'influence externe. Il faut donc le protéger du contact avec les impurs groupes de l'extérieur (c'est l'idée de xénophobie). C'est également une vision organique qui se greffe facilement aux mouvements de masse tels que le traditionalisme, le régionalisme, le nationalisme et l'autonomisme. Même si le folklorisme essaie pourtant de se différencier de l'opinion et d'avoir un système scientifique, la plupart de folkloristes français s'engage dans le mouvement de masse sous le régime de Vichy ». [Note prise dans le cours], Paul-Louis Roubert, « Photographie, art populaire ? », op. c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