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사를 넘어 (사진의 역사로) - 미술과 사진 ]
글쓴이 민석킴 Minseok KIM
#08
파리, 민중 예술에서 다시 예술로
앞서 우리는 어떤 점에서 파리를 예술과 아방가르드의 중심지로 또 민중 예술의 재출현 현장으로 가정할 수 있는지를 살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파리의 지위에 대한 일반화와 그 비옥한 맥락의 축소를 피하기 위함이었고, 나아가 모더니즘 속에서 체험 된 예술 작품을 적절한 맥락에서 분석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도시의 지위를 특징짓는 현상들이 매우 복합적인 것들 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맥락들을 다루는 것은 우리를 마침내 사진과 현대성의 서사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왜 사진인가? 왜 현대성인가? 이 연구에서 사진과 현대성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이룬다. 왜냐하면 현대 생활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사진이며, 사진은 모더니즘과 함께 민중 예술에 대한 논의를 확장 · 발전 시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서사의 중심이 되는 장소, 파리의 지위에 관해 이야기 하자면, 이 유기적 관계에 대한 쟁점들을 건너 뛰어서는 안된다.
이 장에서 우리는 예술이 된 민중 예술 이라는 개념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점에서 그런지 살펴보기 위해, 첫번째로 미술사와 사진사 그리고 민중 예술과 사진과의 관계 그리고 사진사를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눈에 띄는 몇몇 해석들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다음으로는 본격적인 사진의 역사로 들어가면서, 사진의 발명과 그 배경, 발전과 대중화, 그리고 그것이 문화에 가져온 영향과 작용 등을 탐색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중심에서 19세기 예술의 중심지 파리, 역동의 대도시 파리 그리고 근대 생활의 도시 파리를 찾을 수 있다.
미술사를 넘어 (사진의 역사로)
사진의 역사는 어디에서 출발 하는가? 당연히 1839 년 공식적인 사진의 발명과 공표 또는 조셉 니세포르 니에프스 Joseph Nicéphore Niépce 가 촬영한 최초의 사진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관점에 따르면 사진의 역사는 미술사 안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그 안에 편입되어 논의되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예술사와 미학 이론에 정통한 프랑스 철학자, 위베르 다미쉬 Hubert Damisch 의 표현에 따르면, 그동안의담론들이 « 사진을 미술사의 반열에 입성시킨 다음, 미술사의 잣대로 사진을 억지로 규정하는 » 방식이며, « 이러한 담론은 사진에서 사건적 성격을 지워버리고, 사진을 미술사의 연속선상에 편입시키려 애쓴다. 그렇게 되면, 사진은 미술사의 산물이자, [...] 사진의 발명은 미술사의 전개 과정에서 나온 부차적 형식으로 귀결되고 만다(1) ». 이어서 그가 « 사진은 예술 담론의 공간과는 엄격히 다른 담론의 영역들에서 움직인다(2) »고 말한 것처럼, 실제로 19 세기를 지나 20 세기에 들어서는 시점 동안에 사진을 미술사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들을 여럿 발견된다. 그러나 이 연구의 목적이 사진과 미적인 것의 정의를 둘러싼 담론을 파악하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미술사가 사진사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중간에서 대중예술 개념이 어떻게 발견되는지, 나아가 그 논리적 연관성에 대한 몇몇 해석들의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1. 미술과 사진
다게레오타입 Daguerréotype 의 출현 이후, 그 둘을 분리하려는 몇몇 시도 들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오랫동안 미술사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하나의 기술이나 도구 즉, 회화의 보조 기구 또는 ‘예술성이 배제된 생산물 produit non-artistique’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화가에게서 또는 미술 담론의 영역에서 사진에 대해 불편한 목소리가 점점 두드러져 나왔다. 이 현상을 미술과 사진의 대립으로 본다면, 그 시점과, 전환의 맥락 그리고 동기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미술사 안에서 쓰인 사진사에 대한 연구 – 특히 미술품 컬렉션, 대중 이미지 그리고 초기 상업 사진들 등을 중심으로 한 – 에서 안 맥컬리 Anne McCaulely 는 두 매체 간 대립에 대해 중요한 묘사를 남기고 있다. 이 연구에서 맥컬리는 미국 예술사의 역사, 그 중에서도 실물로 착각 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여 그리는 트롱프뢰유 회화 la peinture en trompe-l’œil 의 전후맥락을 언급하면서, 상업사진이 최초로 미술사에서 자리를 차지하며 발생하는 긴장을 분석한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1880 년대에 명함판 초상사진 le portrait carte-de- visite 이 한 트롱프뢰유 회화 속에서 발견된다(3). 그리고 그 후로 이 기법이 몇몇 화가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면서(4), 사진 이미지는 사람들, 특히 당시 문화적 신분 상승을 열망하던 신흥 부자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사진이 미술사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시점은 사진을 둘러싼 미학적 담론의 공간 형성을 예고하는 순간으로 여겨 질 수도 있다. 맥컬리의 묘사를 통해 자세한 맥락을 확인하자 :
« [...] une des premières manifestations de l’acceptation de la photographie commerciale dans le monde de l’art : l’insertion de portraits carte-de-visite ou cartes-album dans les tableaux en trompe-l’oeil anglo-saxons, particulièrement aux États-Unis. [...] De la même façon, les artistes américains spécialisés dans la peinture en trompe-l’oeil des imprimés, lettres, papier monnaie et autres objets trouvés représentés comme s’ils étaient fixés sur une planche [...] Ces peintures, qui, de l’aveu général, suscitaient l’admiration pour leurs effets illusionnistes, glorifiaient en même temps l’abondance, propre à la démocratie, d’imprimés, journaux et articles bon marché, apanage d’une société basée sur la prospérité ambiante, où tout était à vendre, [...] Ces peintres trouvaient normal de reconnaître à la photographie commerciale sa place dans la culture générale et affichaient comme but esthétique de rivaliser avec le rendu photographique que méprisaient les artistes académiques. [...], l’absence de prétention des objets peints comme le travail représenté par le rendu illusionniste attirèrent les nouveaux riches qui se flattaient de leur capacité́ à vendre aux masses et à en avoir pour leur argent(5) ».
유럽 사진의 역사에서는, 그 근거를 회화를 찬양하고 반대로 사진에 대해서는 멸시의 문장들을 남겼던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의 유명한 『1859 년 살롱 Salon de 1859』 비평을 통해 찾을 수 있다. 보들레르는 『리뷰 프랑세즈 Revue française 』의 편집자 장 모렐 Jean Morel 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인 이 글에 사진이 « 예술 그 자체와는 상관 없는 수단 » 이라고 말하면서, 예술로서 사진의 천박함에 대해 반복해서 지적한다 :
« 예술 그 자체와 상관이 없는 수단을 써서 놀라움을 유발하는 능력은 예술가의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 편에서 보면 커다란 재산일 수 있습니다(6) ».
« 사진 산업이 게을러서 작업을 완성할 수 없는 화가나 재주 없는 화가들의 피난처 되면서, [...](7) »
이어서 사진의 특징인 « 정확성에 대한 과도한 취향이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을 억압 시키고 질식 시킨다(8) »고 하면서, 사진과 회화의 대립을 드러내는 것도 확인 할 수 있다. 다음의 발췌에서도 그 대립은 확연히 드러난다 :
« 예술적 행위의 어떤 부문에서 사진으로 하여금 예술을 대신하게 하면, 사진은 자신의 동맹군이라 할 어리석은 대중의 힘을 빌어서 오래지 않아 예술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예술을 망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진은 마땅히 자신의 원래의 역할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술과 과학의 시녀로서의 일로, 언감생심 문학을 대신한다거나 문학을 만들어 낸다고 떠들어 대지 못할 도장이나 속기와 같은, 아주 겸손한 시녀로서의 일로 돌아가야합니다(9) ».
보들레르와 사진에 대한 그의 태도에 관해서는 뒤에 돌아와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그렇다면 이러한 점을 미루어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바로 이렇게 오래 전부터 사진은 독립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아니라 회화를 기준으로 평가되었고, 그 가치에 대한 논의도 미술사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도 19 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급변하는 사회와 함께 막다른 길에 접어들게 된다.
(다음) - #09. 미술사를 넘어 (사진의 역사로) - 민중 예술과 사진
(1) Hubert Damisch, « Introduction », in Rosalind Krauss, Le Photographique. Pour une théorie des écarts, traduit de l’anglais par Marc Bloch, Ann Hindry et Jean Kempf, Paris, Macula, 1990, p. 15. (로잘린드 크라우스,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최봉림 옮김, 서울, 궁리, 2003, p. 14.)
(2) Ibid. pp. 15-16. À cet égard, on peut également citer sa description critique sur l’idée commun de l’histoire de la photographie par rapport à celle de l’art. « 그러므로 전략적 이유에서든 원칙적 이유에서든, 근대의 소설 형식들이 영화의 전례를 만들고 예고했다는 식으로 회화가 사진의 전례를 만들고 예고했다고 주장한다는 통념은 거부되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통념은 현재에 비추어 상상한 과거의 환상일 뿐이다. [...] 적어도 잠정적으로는, 미술사를 본보기 삼아 ‘사진의 ‘역사’를 기술하는 일반 방식은 거부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진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역사가 의미하는 바를 사진의 관점 하에서 해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pp. 16-17. (p. 15.)
(3) Elle décrit pour ce tableau : « Dans The Printseller’s Window, peinture (datée de 1882-1884) d’un obscur artiste anglais, Walter Goodman, au milieu de la masse de gravures, statuettes et autre bric à brac dont le vieux marchand remplit sa vitrine, est ostensiblement étalée une suite de portraits- cartes de peintres contemporains célèbres, de Mariano Fortuny y Marsal, à gauche, à Mihaly von Munkascy, à droite, en passant par Gustave Doré, William Frith, Rosa Bonheur entre autres, avec, dominant la table centrale, un grand portrait de John Ruskin ». Anne McCauley, « En-dehors de l’art », op. cit.
(4) Ibid., « [...] comme John Haberle ou John Peto, intégrent parfois aux objets ordinaires des portraits-cartes identifiables d’actrices ou de chanteuses, de politiciens ou d’hommes d’affaires, dont la représentation méticuleuse s’amuse à égarer le spectateur entre les parties peintes et les vrais morceaux de papier et de carton. Haberle prit même l’habitude d’insérer une trompe l’oeil de son propre ferrotype, en manière de plaisanterie codée, qui faisait de lui la marque publique d’une denrée, comme les autres notices et publicités imprimées qu’il peignait ».
(5) Ibid.
(6) Charles Baudelaire, Salon de 1859, in Œuvres complètes, t. I, texte établi, présenté et annoté par Claude Pichois, Paris,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Gallimard, 1976, p. 614.
(7) Ibid, p. 618.
(8) Ibid, p. 616.
(9) Ibid, p.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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