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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Photo/Review - expo & book

[북리뷰] 『담론』, 신영복 - # 10. 이웃을 내 몸같이

by aTELIER 민석킴 2022. 4. 5.

『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 2015.

 

 

# 10. 이웃을 내 몸같이


pp. 155-156.

     무감어수無鑒於水는 널리 알려진 글귀는 아닙니다. 내가 많이 소개하는 편입니다. 물에 비추어 보지 마라는 뜻입니다. 물水은 옛날에 거울이었습니다. 동경이 나오기 전에는 물을 거울로 삼았습니다. 물에 비추어 보면 얼굴만 비추어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어인鑒於人,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거울에 비추어 보면 외모만 보게 되지만,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보면 자기의 인간적 품성이 드러납니다. 인문학적인 메시지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금언입니다.

 

p. 162.

     묵자학파의 차별성검소함비타협적 실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석불가난孔席不暇暖 묵돌부득검默突不得黔. 공자의 방석은 따뜻할 새가 없고, 묵자의 집은 굴뚝에 검댕이 없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서 주유천하周遊天下하느라 그가 낮은 방석이 따스할 새가 없고, 묵자의 굴뚝은 검댕이 앉을 새가 없다고 합니다. 아궁이에 불 때서 밥을 하지 못할 정도로 궁핍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고단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사람들의 어려움을 목격하면 불 속에 뛰어들고 칼날 위에 올라서기를 거리끼지 않습니다. 그 말은 믿을 수 있고, 그 행동은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내고, 한번 승낙하면 끝까지 약속을 지키며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헌신적이고 실천적인 집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천하의 현학이었고 묵자를 따르는 도속들이 천하에 가득했습니다. 묵가의 이러한 실천적 작풍에 대하서는 장자와 맹자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의 털이 닳아 없어질 지경으로 남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무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수고는 많고 성과는 적은 이상주의자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pp. 162-163.

     묵자학파는 이처럼 실천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상의 전개도 매우 논리적입니다. 세상의 혼란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그 원인을 밝힌 다음에라야 능히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질병의 원인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우환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고,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며, 일하는 자가 쉬지 못한다고 진단했습니다. 현실 인식 자체가 대단히 민중적입니다. 기층 민중의 삶 깊숙이 들어가 있는 생생한 현실 인식입니다. 묵가가 진단한 당대 사회는 무도하고 불인한 사회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도 서로 사랑하지 않으며, 강자는 약자를 억압하고, 다수는 소수자를 겁박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귀족은 천한 사람에게 오만하고, 간사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속인다. 세상은 화찬과 원한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현실의 궁극적 원인은 바로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묵자의 결론입니다. 따라서 근본적 해결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pp. 166-167.

     묵자전쟁과 전쟁 문화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전쟁 방식을 통한 부국강병 정책 그 자체의 불가함을 역설합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성을 점령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온 나라를 초토화하면서 겨우 빈 성을 뺏는다는 것은 마치 소중한 것을 버리고 남아도는 것을 얻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가 과연 나랏일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사실 당시에 가장 소중한 것은 인민이었습니다. 인민이 곧 경제력이고 군사력이었습니다. 토지는 얼마든지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면 그것이 곧 식량이 되고 병력이 됩니다. 인민의 신뢰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충무공이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삼남 지방 백성들이 모두 삼도수군통제사 휘하로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백성들의 존재 자체가 왜군을 상대할 수 있는 물적 자산이었습니다. 농사지어 군량미를 대고, 화살을 만들고, 포탄을 만들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묵자는 사람 다 죽이고 텅 빈 성을 뺏어서 어떻게 다스린다는 것인가 하고 반문합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흉물입니다. 나라는 근본을 잃고 백성은 농사 대신 창칼을 들고 전쟁에 나가야 합니다. 밭 갈던 말이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게 됩니다. 전쟁이란 이처럼 천하를 환란에 몰아넣는 흉물임에도 불구하고 왕공대인들이 그것을 즐긴다면 이는 마치 전하 만민의 죽음을 즐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자도 개선장군은 상례로 맞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돌아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관한 한 묵자만큼 그 불가함과 흉포함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쟁은 수년, 빨라야 수개월이 걸린다. 임금은 나랏일을 돌볼 수 없고 관리는 자기 소임을 다 할 수 없다. 겨울과 여름에는 군사를 일으킬 수 없고 꼭 농사철인 봄과 가을에 전쟁을 벌인다. 씨 뿌리고 거둘 겨를이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백성을 잃고 백성은 할 일을 잃는다. 화살, 깃발, 장막, 수레, 창칼이 부서지고 소와 말이 죽으며 진격할 때나 퇴각할 때에도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된다. 죽은 귀신들은 가족까지 잃고 죽어서도 제사를 받을 수 없어 원귀가 되어 온 산천을 떠돈다. 전쟁에 드는 비용을 치국에 사용한다면 그 공은 몇 배가 될 것이다.
     묵자학파는 반전 평화론을 전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대거 방어 전쟁에 투신하는 실천적 면모를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