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민중 예술과 사진, 민석킴
[ 미술사를 넘어 (사진의 역사로) - 민중 예술과 사진 ]
글쓴이 민석킴 Minseok KIM
#09
2. 민중 예술과 사진
그렇다면, 이 두 영역의 역사 – 미술사와 사진의 역사 – 가운데, 민중 예술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 이제 여기에서, 앞서 자세히 살펴 보았던 민중 예술 개념을 사진의 역사와 함께 살펴보도록 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진은 19 세기, 1860 년대 까지 대중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즉, 사진은 – 너무 전문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었던 – 이 활동에 접근이 가능한 엘리트 또는 적어도 아마추어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진이 결국 대중에게 호응한 활동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사진이 민중 개념과 맺는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이 전환에서 다시 한번, 사진과 미술 역사에 거대한 두 축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민중 예술에 주목 해 볼 수 있다. 민중 예술을 하나의 의미개념으로 확정하여 사용하는 것은어렵다.왜냐하면이개념은다양한층위로정의될수있기때문이다.폴- 루이 후베르는 민중 예술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이 개념을 네 가지 층위로 구분하길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첫 번째 층위는 “민중의 예술 l’art du peuple”이다. 이것은 엘리트 예술 l’art des élites 과 대조되고, 문명화되지 않은 자들의 예술 l’art non-cultivé 과 그 의미를 공유한다. 이것은 주체와 사회 계급에 따른 분류로, 엘리트 예술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양분하는 구분이다. 두 번째 층위는 “민속예술 l’art d’un peuple”이다. 이것은 좀 더 좁은 의미의 분류로 한 문명 또는 한 민족의 예술을 뜻한다. 이것은 민족지학적 관점에 따른 분류이다. 세 번째 층위는 “예술가에 의하지 않은 예술 l’art des non- artistes”이다. 다르게 말하면 , 사회에서 예술로 공인되지 않은 생산물 또는 행위를 뜻한다. 이것은 사회적 규정에 따른 분류이다. 네 번째 층위는 “대중화된 예술 l’art popularisé”이다. 기술과 행위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보급을 기준으로 하는 분류이다(1). 사진과 민중 예술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 분류를 이해하고 구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진은 이 네 가지 의미개념 모두와 관련해 논의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민중의 예술’, 즉 문명화되지 않은 것으로 이야기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문명화된 계급인 엘리트들에게 사진이 예술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초기에 사진은 일부 특권자에게만 그 접근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엘리트 예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엘리트 계급에게 사진은 천박한것으로 여겨졌고 진정한 예술, 회화와 예술작품에 대한 기호를 망치는 것이었다. 보들레르의 말처럼, 사진은 엘리트가 되지 못하는 대중들이 열광하는 ‘사탕발림’으로 보여졌다. 보들레르의 글에서 이같은 태도를 확인 할 수 있다 :
« 아름다움에 늘 놀람의 요소가 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대중은 예술과는 무관한 수단을 동원하여 놀라움의 전율을 느끼고 싶어하고, 거기에 순종적인 예술가들은 그런 대중의 취향에 허리를 굽힙니다. [...] 이 맹목적인 대중들 [...](2) »
그리고 사진은 “예술가에 의하지 않은 예술”로 여겨질 수 있다. 회화와는 다르게 사진 행위가 예술로 평가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사진은 그 발명 직후부터 예술적인 것이라기 보다, 일종의 산업, 과학, 기술, 기교 등으로 여겨졌으며, 무엇보다 사진을 얻기 위해서 예술가의 노력과 희생이 아니라 단순히 셔터를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회가 정의하는 예술의 가치 측면에서 볼 때, 사진은 고귀한 noble 것이라기 보다는 천박한 vulgaire 것으로 보였고 예술로서 한동안 공인되지 못했다. 부르디외가 묘사한 다음의 발췌는 사진이 예술 작품의 기준에 부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사회의 모순된 견해를 매우 잘 보여준다 :
« 사진 행위는 노력과 노동으로서의 예술적 창조에 대한 대중의 생각과 완전히 상반된다. [...]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보기에 사진 행동과 회화 행동을 나누는 차이에 대해 느끼고 표현한다. [...] 왜냐하면 사진기를 규정하는 비인간적 속성을 내보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사진을 위한 사진을 찍는 일을 사람들은 불필요하고 타락한 것, 또는 부르주아적인 것이라고 배척한다. “필름 낭비야.” “낭비할 만큼 필름이 남아돌아가나 보지.” [...] 반대로 사람들은 화가가 그리는 정물화 – 좀 엉뚱한 소재를 다루고 있을지라도 – 에 대해서는 보다 쉽게 인정한다. 왜냐하면 회화는 실재에 대한 단순한 성공적인 모방일지라도 어려운 노력을 전제로 하며 그것을 통해 숙련된 기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기계적 복제에 대한 모순된 견해가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해 사진이 완성된 예술 작품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믿고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는 생각과, 사진은 노력 없이기계적으로이루어진작품이라는생각이맞서게된다(3) ».
또 사진은 “민속예술”의 영역에서 이야기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진의 특수성 – 사진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다는 자연스러운 믿음, 일종의 증명 혹은 실재의 완전한 모사 une imitation parfaite de la réalité 로 일컬어 지는 사진의 특성(4) – 덕분에, 사진은 민족, 국가, 문명 등의 식별 l’identification 과 가치화 la valorisation 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 아래에서, 특히 그들은 사진 이미지 속에 대중의 모습, 지방의 풍경과 문화 등의 등장을 조명하면서 근대사회 재조직과 집단 이념 결집을 이루어 내고자 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 장의 두 번째 주제인 『파리, 대중예술 재출현 현장』을 통해, 특히 세 번째 『국가주의 신화』에서 그 사례와 맥락을 자세하게 다룬 것을 환기하고 다시 돌아가 참고 할 수 있다71 . 마지막으로 사진은 당연히 “대중화된 예술”의 범주에 포함 될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사진에 둘러 쌓인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당시 기술의 진보와 공장화 · 대량생산 같은 산업 체제의 변화에 힘입은 사진은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19 세기 후반, 20 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풍경화나 인물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코닥 Kodak 의 광고 슬로건은 당시 사진의 보급화를 잘 반영해준다(5).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진이 그 발명부터 대중성 le caractère popularisé 을 타고났다고 여겨 볼 수도 있다. 앙드레 후이에 André Rouilé 는 다게레오타입에 대한 줄 자낭 Jules Janin 의 묘사를 인용하면서 사진의 타고난 평등성 la démocratie naturelle de la photographie 을 상기시킨다. 사진 앞에서 누구나 평등 할 수 있었다 :
« Dès 1839, Jules Janin s'émeut en effet de constater que la plaque daguerrienne accueille, sans distinction aucune, « la terre et le ciel, ou l’eau courante, la cathédrale qui se perd dans le nuage, ou bien la pierre, le pavé, le grain de sable imperceptible qui flotte à la surface ; toutes ces choses, ajoute- t-il, grandes ou petites, qui sont égales devant le soleil se gravent à l’instant même dans cette espèce de chambre obscure qui conserve toutes les empreintes(6) ». Bref, comme le soleil, la photographie ne hiérarchise pas, son regard sur le monde est démocratique: toutes les choses sont égales pour elle. Cet hymne à la démocratie naturelle de la photographie est en fait la version positive de l’un des thèmes qui sera sans cesse opposé à la photographie pour lui dénier toute prétention à revendiquer le statut d’art(7) ».
이런 점에서, 사진과 회화의 역사에 관한 담론의 공간에서, 민중 예술의 개념을 떼어놓고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특히 동시대처럼 사진 매체의 유례없는 고도화와 대중화의 맥락 안에서라면, 이러한 이론적 논쟁은 더 활발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더욱이 이렇게 사진과 민중 예술 개념, 둘 사이의 긴밀하고 상호적인 연관성에 대해서 여러 관점으로 살펴보는 것은 매체 그 자체를 분석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의가 미술사로부터 사진의 해방을 야기할 수 있고, 그 영향과 작용에 대한 질문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그 영역을 확장하여,예술과 사진 그리고 민중 예술에 관한 정치 · 사회적 관점의 해석들을 살펴보자.
(다음) - #10. 미술사를 넘어 (사진의 역사로) - 정치 · 사회적 관점에 의한 분석들
(1) [Note prise pendant le cours], Paul-Louis Roubert, « Photographie, art populaire ? », op. cit. « Par « art populaire », faut-il, en effet, entendre l'art du peuple, par opposition au non-peuple, aux élites cultivées, aux classes sociales dirigeantes, aux savants et aux lettrés ? Est-ce l'art d'un peuple, par opposition aux peuples qui l'entourent, l'art caractéristique d'une ethnie ou d'une civilisation ? L'art populaire est-il l'art des non-artistes, l'art de ceux pour qui la création artistique n'est ni une activité spécialisée, ni une occupation professionnelle socialement reconnue ? Est-ce l'art popularisé, l'art diffusé par les moyens de communication modernes, un art communiqué aux grandes masses, conçu pour répondre à leurs goûts et uniformisant leurs attentes ? La notion d’art populaire admet donc différentes significations ».
(2) Charles Baudelaire, Salon de 1859, in Œuvres complète, op. cit., p. 616.
(3) Pierre Bourdieu, Un art moyen : essai sur les usages sociaux de la photographie, op. cit., pp. 113- 114.
(4) Cf. Rudolf Arnheim, On the nature of photography, (texte anglais avec traduction italienne), in Rivista di storia e critica della fotografia, II, 2, 1981, p. 12. Traduction française par et dans Philippe Dubois, De la photographie. Anthologie, Liège, section Information et Arts de diffusion, 1982. On peut rappeler une description sur la particularité de la photographie, dit-il « Tout ce que j’ai dit dérive finalement de cette particularité fondamentale du médium photographique : les objets physiques impriment eux-mêmes leur image au moyen de l’action optique et chimique de la lumière. Ce fait a toujours été reconnu mais traité de bien des manières différentes par ceux qui ont écrit sur le sujet ». Cité par Philippe Dubois, L’acte photographique, Paris, Nathan, 1990, p. 18.
(5) « 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 The only camera that anybody can use without instructions. Send for the Primer, free ». Traduit en français « Vous appuyez sur le bouton, on se charge du reste. Le seul appareil photo que tout le monde peut utiliser sans instructions. Envoyez-nous gratuitement ». Nous pouvons aussi citer une description publicitaire parue à Paris : « Aucune notion de la photographie n'est nécessaire Pressez simplement le bouton du Kodak, et vous pouvez faire de une à cent photographies consécutives, en une demi-heure, en un jour, en un mois, en un an, à votre choix ». Cité par Reese V. Jenkins, « George Eastman et les débuts de la photographie populaire », Culture technique, n°10, 1983, p. 74-87.
(6) Jules Janin, « Le daguerréotype » [sic], L’Artiste, novembre 1838-avril 1839, in André Rouillé, La Photographie en France, Paris, Édition Macula, 1989, pp. 46-51.
(7) André Rouillé, La photographie, Paris, Gallimard, 2005, p. 66.